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후반까지의 영화청년들에게 영화평론은 반농반진으로 "강한섭이냐 정성일이냐"로 요약되곤 했다. 영화평론가가 설마 이 두 분만 계셨겠느냐만, 그러니까 이 두 선생은 당시 가장 활발하게 매체에 기고하며 가장 대중적인 평론가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다. 정성일이 무려 '대중적'이라고? 그렇다. 정성일은 특유의 현학적인 문체와 '이름도 못 들어본 세계영화사의 걸작을 줄줄 외는' 영화에 대한 지식 때문에 종종 대중과 가장 유리된 평론가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렇게 현학적이라며 비판을 받은 데에는 당시 그가 가장 대중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그리고 대중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평론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과연 그의 활동은 매우 독보적이어서, 한국의 영화담론의 활성화를 위해 그저 기존에 존재하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잡지를 창간해 버렸다. 그렇기에 나를 비롯한 동세대 PC통신 영화동호회 출신 영화청년들의 대부분은 또 한편으로 이른바 '키노 세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애증의 키노였다. 매달 키노에 실린 현학적인 글을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읽거나 그도 포기한 채 페이지를 설렁설렁 넘기며, 우리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키노 기자들의 현학적인 문체에 진저리를 치고 '정성일과 그의 아이들'을 욕하곤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욕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행복한 거였다. 그들도 그렇게 욕을 먹었던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야 단순히 키노를 매달 사서 읽고 모으는 데에 그쳤지만(몇몇 이가 빠진 곳도 있긴 하지만 창간호부터 2000년까지 거의 대부분의 권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키노는 단순히 영화글을 게재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영화평론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글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김지훈 평론가도 키노 영화평론 공모를 통해 당선되었고, 키노 모니터 회원들 중에서도 현재 영화 칼럼니스트나 기자가 다수 배출되었다고 알고 있다. 키노 기자들은 이후 곳곳으로 흩어져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정성일 편집장의 뒤를 이었던 이영재 이연호 편집장은 올해 김기영 10주기를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낸 김기영 평전의 집필을 담당했고, 장훈 기자는 이후 영상원을 거친 뒤 첫 장편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로 대박을 터뜨렸다. 주성철 기자는 필름2.0을 거쳐 씨네21의 현역 기자로 여전히 활동중이며, 곽신애 기자는 영화홍보사를 설립했다가 지금은 영화제작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곽신애 씨가 정지우 감독의 부인이자, 곽경택 감독의 동생... 맞지 않나?) 이 사람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도 이런 걸 시시콜콜 알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키노의 영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면서 키노는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엔키노에 흡수되었다가 폐간되고 말았고, 그 엔키노 역시 CJ에 편입됐다가 사이트가 닫히고 말았다.
이후 우리의 영화담론이라고 하는 건... 개나소나 영화에 대해 떠들지만(나 역시 개나소나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내 눈에도 개나소나로 보이는 사람들도 참 많다), 깊이있고 심도 넘치는 비평과 담론을 주도하는 담론세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개개인은 모두 자신의 블로그 안에 갇혀 그저 영화에 대해 혼잣말이나 늘어놓고 자신의 지인 몇 명이나 우연히 지나친 방문객의 "글 잘 읽었어요." "영화 보는 눈이 형편없군요." 따위의 즉자적인 반응이나 들을 뿐이다. 영화평론가들이 아무리 매체에 글을 아무리 쓴들 그 글은 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읽히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주간지가 할 수 있는 비평과 담론 생성이란 명백하게 한계가 있는 것이고, 아무리 돈이 안 되고 시대착오적이라 해도 영화월간지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행히 20대의 젊은 영화청년 몇이 그걸 시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이들은 처음엔 자신들의 돈을 털어, 지금은 모처의 후원을 받아 월간지를 만들고 이를 무가지로 몇몇 극장 로비에서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부족함을 느끼며 비판할 수밖에 없고, 이 지점은 잡지를 만드는 당사자들부터 뼈저리게 느끼는 한계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20대의 영화광 몇몇을 중심으로만 영화담론이 좀 펼쳐지다가 마는 것은 영화담론 자체를 소수의 자족적인 전유물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 당대의 공감대를 투영하는, 그리고 당대의 공감대를 찾아내는 중심적인 영화담론이 있어야 하고, 개봉했다가 명멸하는 영화들 속에서 그런 영화들을 찾아내 제대로 된 지위와 합당한 담론을 부여해줘야 한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은 완성용 프린트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극장에서 상영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렇게 그 영화와 관련한 담론이 형성되고 모종의 평가와 공감대가 이뤄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부산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의 현황과 전망을 묻는 컨퍼런스가 열렸고, 그 컨퍼런스에서 사회자이자 주최자였던 김진해 교수께 오늘 전화를 드렸다. 김교수가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영화담론의 활성화. 과연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것이 어떤 흐름으로 묶이고 연결되어 '담론'다운 담론으로 발전하며 어떤 형태가 주어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김진해 교수와 통화하면서 나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동조했다.
이쯤에서, 우리에겐 정말로 영화월간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저 개봉할 작품을 소개하거나 배우들이 무슨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장에 나타났는지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우리 시대의 영화란 무엇인가 묻고 대화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갑론을박의 토론이 벌어지거나 그 토론을 유도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다시 월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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