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08 00:48

라만차

모두들 너무나 작품을 극찬했던 까닭에 기대가 꽤 컸고, 워낙 착실하게 예습을 하고 가선지 곡들도 익숙했고, 마지막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쳐댔다. 내 주변은 웬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서 내가 앉은 줄에서 기립박수를 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내 앞에 두어 줄에도 기립박수자는 거의 없었고. 과연 류정한은 그렇게 막강한 티켓파워를 자랑할 만한 배우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돈자 때문에 거의 통곡하듯 울었다. 2막에서 알돈자가 처하는 상황은... (아니 난 윤간장면이 있을 거라곤...) 하지만 윤공주의 목소리와 노래는 역시 내 성에 안 찬다. 진성과 가성이 그렇게 어색하게 오고가는데 이 캐릭터에서 그게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다만 이 공연을 관통하는 가장 큰 재미는 '아이러니'에 있구나, 생각했다. 그걸 확신한 게 '새야 작은 새야' 넘버가 나올 때였다. 더없이 아름답고 달콤한 이 노래는 무대에서 실제로 확인해 본 바 알돈자를 희롱하고 조롱하는 노래다. 심지어 가장 폭력적인 장면에서 다시 희화화돼서 쓰인다.

하지만 극 자체, 그러니까 이 공연이 드러내는 주제와 각색 방향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그 '이상, 꿈'이라는 게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광인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현실에 안주한 이들을 비판하지만, 이 공연에서 이상과 꿈을 얘기하는 방식은 상당히 안전하고 반동적이며, 현실도피적이다. 나는 이상과 꿈이야말로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는 것들, 피투성이 전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추동력이라 믿는다. 하지만 환상 속에서 꿈을 위한 좌충우돌은 이상과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귀한 전투가 아니라, 몽상이고 도피이며 핑계이지 않는가. 그것은 오히려 이상을 광인들의 몽상 영역으로 왜곡하고, 현실에서 이상을 위해 지금도 피투성이로 싸우고 있는 이들을 광인으로 매도하고 타락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극의 마지막에서 "여러분 모두가 라만차의 기사입니다"라고 할 때, 그 대사는 배우의 역량이고 뭐고간에 무지하게 공허할 뿐만 아니라 기만적으로까지 들렸다. 한마디로 이 공연에서 각색의 방향은 무척 좋은 부분과 끔찍하게 싫은 부분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 그것이 거대한 은유임을 순순히 인정한다면 그렇게까지 끔찍한 요소는 아닌 건지도 모른다. 아마 최근에 현실에서 몽상을 이상으로 둔갑시키며 기만을 떠는 인간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필로우맨> 때를 생각해 세번째 줄이냐 아홉 번째 줄이냐 했을 때 아홉번째를 골랐는데, 역시 9열은 무대 전체는 무척 잘 보이지만 배우들의 표정은 잘 안 보인다. 5열 정도가 좋을 듯. 무대 전체를 조망하며 한번 봤으니 그보다 더 앞쪽에서 한번 다시 보는 것도 고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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