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4 04:02

새벽의 잡담

1. 목도 마르고 배도 출출해 우유를 세 컵이나 마셨다. 뭐, 한번에 500ml야 껌이고 앉은 자리에서 1000ml를 다 마셔본 적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난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소화도 못 시킨다는 것. 우유 비린내를 싫어하고, 아침에 우유를 마시면 여지없이 설사한다. 마신 후 입안에 남는 느낌과 냄새도 싫어한다. 그래도 우유는,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작은 투자다. 끼니를 자주 거르기 때문에 걱정이 더한 골다공증에 대한. 어머니의 당부가, 혼자 살면서 절대로 우유와 계란과 치즈는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치즈는 안 챙겨도 우유와 계란은 챙기고 틈나는 대로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마시고 나니 머리가 아픈 게, 역시 소화가...? 그냥 잠이 부족해서인가?

2. 청개구리. 마감 닥치고 넘기고 그래도 작업이 많이 남아있으니 엄하게 기사를 쓰느라 새벽을 맞아버리다니. 정작 기사를 열심히 써야 할 때는 그냥 놀고 마는 주제에. 밀린 리뷰가 한둘이 아니다. 내일은 또 부천까지 취재를 가야할 듯하고... 그런데 이건 언제 끝을 낸담. 영어대사 녹취를 해야 할 부분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다. 그런 주제에 이런 거나 쓰고 있다.

3. You only grow when you're at the bottom. 원어는 포르투갈어인데 영어 자막으로 이렇게 박아놨더라. 인생이 바닥을 쳤을 땐, 남은 일은 올라가는 것뿐이라는 아주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격언 되시겠다. 나는 지금 추락하는 중일까,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중일까. '바닥'이라 생각했던 곳이 바닥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다. 바닥인 듯 했는데 발을 조금 더 내딛어 보면 다시 밑이 무너지면서 다시 가속도가 붙어 추락하는 경우들. 그럼에도 이제껏 인생 꽤 편하게 살아온 셈이고, 바닥이라 느꼈던 그것들은 대체로 엄살인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도 밑으로 더 많은 바닥들이 남아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바닥이란 언제나 치고 올라오라고 있는 법. 스스로를 망가뜨리지만 않으면 된다.

4.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에 덩달아 블로그에 대해서도 고민 중. 대충 글써서 커리어 쌓고 밥먹고 해서 그렇다. 최악의 경우 둘 다 닫는 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둘 다 건사하는 방향으로. 온라인에 끄적대면서 쉽고 편하게 내뱉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5. 왼쪽 새끼손가락 쪽으로 경미하게 마비가 오고 있다. 아, 이거 진짜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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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02:38

흑기사

그러고보니 요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다. 저 밑에 마감증후군에 시달린다고 고백했지만서도, 정작 진도는 나가지 않고 심지어 딴짓으로만 밤을 꼴딱 새는 밤도 간간이 있었던 요 며칠, 시사회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왕복 네 세 시간 반을 들여 부천을 이틀이나 연속 갔다오기도 하며 이래저래 일에 치였던 요 며칠이다. 그러다가 커피를 두 잔을 마시고 들어간 <흑기사>를 보고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몸 상태가 그런데 '기가 쎈' 영화를 두 시간 반에 걸쳐 봤으니 기절하기 직전의 마치 죽을 것처럼 몸이 힘든 게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피가 흐르리라> 때도 딱, 이랬는데. 하지만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몸이 회복됐다.

히스 레저에게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바쳐야 한다는 미국의 일부 히스 레저 팬들의 주장은 이쁜 점을 더 이쁘도록 보이게 만드는 열렬한 팬심의 무작정 생떼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게 내 감상이다. F지의 H기자님은 자신이 아는 사람은 이 영화를 "슈퍼히어로물로 다시 만든 <대부>"라고 했다던데, 실은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동행한 이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이 "<대부> 저리가라 할 정도의 호러물"이란 거였다. (내게 가장 무서운 호러물이 바로 <대부>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그저 악당이 아니라 퓨어한 악 그 자체인 창조주여서, 선/악의 구분을 범주를 가볍게 뛰어넘은 그저 존재가 악인, 그런 절대적인 존재로 보인다. 그는 신일 수도, 악마일 수도 있다. 나는 결코 자발적으로는 보고 싶지 않은 심연의 괴물의 그림자를 언뜻 보고말아버린 것 같아서 당황스럽고, 무섭고, 우울하다. 이 영화를 별로였다고 표현할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실은 영화의 완성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드러내보인 그 악에 공포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슬프다. 새파랗게 질린 채 내 눈에서 흘러내렸던 눈물을, 동행한 지인은 놀리기는커녕 감히 입에 올리지도 아는 척도 못 했다. 이런 역을 연기한 후라면,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약을 집어먹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히스 레저가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악마와 은밀하게 거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마저 든다. 그 히스 레저는 내가 영화에서 익히 보아오던 그 히스 레저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뻣뻣하고 창백하던 히스 레저는 그 어디에도 없이, 생전 처음 본 히스 레저가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히스 레저의 조커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점점 기대하게 된 어떤 모습에서 조금 부족한 어중띤 모습을 종종 드러내곤 한다. 동행한 이는 어쩌면 그렇기에 조커가 더 특별해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지만...

내친 김에 <흑기사>의 리뷰를 써버렸다. 내일 기사가 공개가 되면 저쪽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 이 글에 나온 표현 중 일부가 때로는 문장 통째로 들어있기도 한 글이다. 온라인 매체의 이른바 '스압'(스크롤 압박)을 고려하다 보면 언제나 글이 짧아지고 하고픈 말을 다 담지 못하게 된다. 다만 그런 글이 왜 나왔는지, 조금의 '수다'를 여기에 기록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다. (실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이 글이 점점 길어지고 무거워진 뒤, 차마 지우지 못해서.) 개봉하면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다시 보러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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